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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탑(월명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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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수시탑(守市塔)은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인 1968년 군산시 제16대 박동필 시장이 일제시대 식민지 수탈의 거점도시로서 호황을 누리던 군산시가 광복 이후 일본과 중국 무역의 단절로 인한 해외무역의 부진으로 경기 침체에 빠져 경제가 매우 어려워지자 군산시민들의 뜻을 모아 군산을 다시금 번영시키자는 뜻으로 세운 탑이다.

그 형상은 이태리 항구에 있는 모녀상을 모델로 하였고, 위치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사는 곳, 바로 월명산의 사당이 있었던 곳이었으며, 또한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의 신앙처였던 곤삐라 신사가 자리했던 곳이다. 그 자리에 세워진 수시탑은 건립 이전에 전북의 서정 시인인 신석정 시인에게 이름을 부탁해서 탑의 이름을 받았는데 당시 탑의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춘망"이라는 시에서 이름을 딴 가칭 "봄을 기다린다는 뜻의 춘망탑"이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탑이 완공된 후에는 "춘망탑"이 아닌 군산시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뜻의 성시탑(成市塔)이 되었고, 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시를 보호한다는 의미의 수시탑으로 개명이 되고 그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수시탑의 설계는 前홍익대 강명구 교수가 설계했는데 탑의 모습은 군산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군산항에 선박의 입출항이 많아야 한다는 의미로, 바람에 나부끼는 선박의 돛 모습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복합시킨 형상을 하고 있다. 당시 설계 의도에서는 수시탑 돛 부분의 각이 현재보다 부드러웠지만 당시 시공 기술의 부족으로 각이 드러나는 한계성이 있었다고 한다.

수시탑의 시공은 약 120평 대지에 예산 280만원으로 추진되었고 수시탑의 건립을 맡았던 회사는 이익을 포기하고 공사를 하였으나 당시 기술과 장비 부족으로 매우 난공사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예산부족으로 인해서 본래 설계 높이 30m이였던 탑이 28m로 완공되는 아쉬움도 발생했다. 탑 모형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윗부분은 바람에 나부끼는 돛, 혹은 타오르는 불꽃을 상징하고, 가운데는 어선의 곡선을 빼어 닮은 모습의 선박의 형태로 앞과 뒷부분이 곡선으로 휘어져 항구도시답게 배의 이미지를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하단은 탑의 안정성이 돋보이는 두텁게 처리한 두 쪽의 커다란 콘크리트 벽체를 잘 손질한 검은색의 대리석으로 마감했으며 동서로 공간이 생기도록 설계하여 확 트인 조망을 제공하고 있다.

수시탑의 형상은 흰색의 돛이 안팎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급하지 않게 곡선을 지으며 바람에 한껏 부풀린 돛을 멋지게 표현했으며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그 모습이 돛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돛 부분 전체를 아주 커다란 천으로 둘러친다면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영락없는 콜라병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탑의 모습이 굉장히 안정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 하나 돛 부분의 숨은 뜻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돛의 하단 부분은 여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태아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품고 있는 자궁을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상징하며,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것이다. 당초의 이름에서처럼 성시(盛市)를 바라는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다. 즉, 생명의 원천인 자궁처럼 군산은 흥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수시탑의 주조색은 흰색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이라 불렸고 백제의 복식에서 하얀 동정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흰색은 이 고장에 살았던 백제인의 표상이기도 하였으며 흰색 자체의 순수성과 완벽성을 즐기던 민족성이 유전자로 남아 “완전한 균형, 깨끗한 심성, 건전한 활동”을 바라는 마음에서 수시탑은 흰색으로 세워졌다고 여겨진다.
관심을 가진 사람은 수시탑의 어느 쪽이 앞인지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 수시탑 이라고 한자로 표기되어 부착된 이름표는 탑이 건립된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 붙여졌고 탑의 이름이 성시탑에서 수시탑으로 개칭되고도 수년이 지난 후라고 생각된다. 이 이름표가 붙어 있는 쪽은 배 모양의 형태에서 볼 때 고물 쪽이고 동쪽인 이물 쪽이 규모가 약간 크고 위로 치켜진 부분도 높은 것으로 보아 앞 쪽으로 판단된다.
즉, 서해 먼 바다로 나간 어선이 만선을 하여 항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중국 쪽으로 멀리 나가 며칠 동안 힘든 어로작업 끝에 어창에 물고기를 가득 채우고 돌아오고 있는 돛단배인 것이다. 또한 수시탑의 상단 돛 부분은 외부 돛과 내부 돛의 두 개로 이루어졌는데 안의 것을 밖의 것이 감싸고 있는 형태로 외부 돛은 최상단의 꼭지의 방향이 남북을 향하고 있으며 내부 돛은 외부 돛과 반대로 그 꼭지가 동서를 향하고 있다.

또한 배 모형의 네 귀퉁이는 각각 남동, 남서, 북서, 북동 방향을 향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여덟 개의 방위을 가리키는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항해에 있어서 정확한 방위는 안전과 직결되는 것으로 수시탑은 우리시의 나아갈 바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군산을 떠날 때에는 수시탑을 바라보며 돌아올 날을 기약하고 다시 돌아올 때 수시탑이 보이면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도를 한다.
이처럼 수시탑은 이스터섬의 석상과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단순하게 지역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깨끗한 심성을 지닌 진취적인 시민의 성격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의지와, 건전한 활동을 이상으로 삼는 사회의 분위기를 탑의 건립 목적과 상징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배 모형에 2006년에는 조명시설을 설치하여 네 귀퉁이에서 밤이면 색색의 조명이 쏟아져 육지의 화려한 등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강한 빛 대신 부드럽고 밝은 빛을 이용하여 주변자연환경과 조화롭도록 연출하고 있다. 또한 보는 이에 따라 윗부분이 펜촉같이도 보여 바로 가까이에 <탁류>를 쓴 채만식문학비와 어울려 또 다른 의미를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탑에서 튕겨진 빛으로 산란효과를 내 어두웠던 산책로도 한층 밝고 아늑해지도록 꾸며 눈앞엔 서해바다를, 등 뒤로는 시내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더위가 푹푹 찌는 여름날 밤에 수시탑에 오르면 시원한 바닷바람과 강줄기를 따라 오가는 각종 선박의 불빛이 물빛과 어울려 차분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여름 밤 수시탑 인근 산기슭에는 인근 해망동 주민들의 피서인파로 빈자리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또한 이 인근지역은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로 더욱 유명한 탤런트 김수미가 태어나고 군산여고 3학년 때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으로 지금도 어릴적 김수미를 기억하는 어른들의 옛 추억담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수시탑은 파리의 에펠탑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제구조물도 아니고 뉴욕항구에서 입항하는 배를 횃불을 들고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위압적이지는 않지만 겉으로나 속으로나 상징하는 바가 지역적으로 전 시민이 추구하는 목표와 일치하고 육상과 해상 그리고 공중에서도 그 모습이 또렷하여 진정한 고향의 상징물로써 더할 나위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날카로운듯한 윗부분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는듯한 모습은 어렵거나 고단한 일도 화합으로 하나 될 수 있게 갈망하며 시를 수호하고 상징하는 탑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군산시민 중 수시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 한 장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는 수시탑에 올라 강 건너 장항을 바라보며 도시의 남쪽이 아닌 북쪽에 강이 있음으로 해서 느낄 수 있는 군산만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스탬프비치장소 : 수시탑(야외)계단 앞
소재지 : 동산길 29 (금동)
요일 및 시간 : 월~일 10: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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